정보화마을 충남 금산 추부깻잎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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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 추부깻잎마을 전경사진입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농촌에 그리 흔치 않았단
사고파는 장터가 있어서 그런지 추부면을 가리켜 속칭 마전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금산 방면에서 한양으로 오고갈 때 보통 지금의 추부면을 지나게 되며 이곳에 이르러서는 마달령이란 재를 넘어서 대전을 거쳐서 한양길에 올라야 했다.그 마달령이란 재는 높고 가파라서 이 고개를 넘을 때는 말(馬)이 넘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하여 마달령재 넘기가 제일 어렵다 하였다. 또, 이씨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태를 묻은 태봉재가 수려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른 명당 자리로 꼽는 만인산 기슭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추부면의 동쪽은 군북면이, 남쪽은 군북면과 금성면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복수면, 북쪽은 대전광역시 동구와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과 접하며 경계를 이룬다. 동쪽에는 충청남도에서 제일 높다는 서대산이, 북쪽으로는 도덕봉이, 서쪽으로는 만인산이, 그리고 남쪽으로는 비교적 낮은 야산 지대와 들이 트인 듯 위치를 조립한 지역에 추부면은 위치한다. 추부면의 동북쪽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는 추부천은 추부 분지를 이루고 그 추부천으로 합류하는 여러 냇물 주변과 추부천 유역이 사람들이 사는 근거지가 된다. 백제 때는 진동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처음에 황산군의 영현인 진동현에 속했다가 뒤에 진례군에 속한 영현에 속했었다. 고려 때에도 그리 속했다가 고려 말기 공양왕 때에 이르러 전라도 고산현감이 겸해서 다스리는 감무의 고을에 속했으며 조선 시대가 개국되면서 태조 2년(1393)에 태조의 태를 만인산에 안봉하고 승격한 지진주사(知珍州事)의 고을인 옥계부(玉溪府)에 속했었다. 그후 진주현에 속했다가 태종 12년(1412)부터는 진산군에 속했다. 고려시대 말기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우리나라 해안으로 침투하여 내륙지방 깊숙이까지 쳐들어 오는 왜구들이 수차례 침범해 옴에 따라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도 입었으며 한때는 왜구와 우리나라 군사와의 싸움터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서서히 명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여 부락이 크게 형성되어 갔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진산군의 지역으로서 진산읍내의 동쪽이 되므로 동일면이라 하여 추동, 동정, 상마전, 하마전, 미삭, 마음, 남산, 장대, 승암의 9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동이면의 행정, 요광원, 검간, 장산, 장동, 원당, 평촌, 신익, 검동, 성덕, 당산, 서대, 비례, 자부의 14개 동리를 병합하여 동일면의 소재지인 추동과 동이면의 소재지인 자부도의 이름을 따서 추부면이라 하고, 추정, 마전, 비례, 자부, 장대, 요광, 신평, 성당, 서대의 9개리를 개편 관할하다가 1973년 7월에 복수면의 용지리를 편입하여 현재 10개리를 관할하는 면이다. 추부면의 면적은 49.065㎢에 가호수는 2,092호 인구는 10,656명이다.추부면에서는 해주오씨를 비롯하여 진주강씨, 순흥안씨, 김해김씨, 반남박씨, 옥천전씨, 하동정씨, 경주최씨, 밀양박씨, 청주한씨, 전주이씨, 경주이씨, 청주양씨, 경주정씨 등이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고 집성적인 세거를 누린 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농경의 다작 시대로 접어드는 조선 시대에 이 지역에서는 큰 장자보다 평균을 유지하는 중농들이 많았던 것도 이 지역의 특색이라고 보겠다.